부산시 수영구청의 의뢰로 광안리 개발 계획도를 만든 적이 있다. 당시에는 광안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동네 환경 개선 차원에서 나름 신경써서 작업을 하였다.
나중에 지역 신문에 광안리 개발과 관련한 기사와 함께 실린 적이 있었지만 이 계획도는 말그대로 계획에 그치고 말았다.
만약 지금 나에게 이런 의뢰가 왔다면 결코 저런 안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아무 것도 건들지 않고 내가 어릴 적 봤던 그 한적한 광안리로 돌려놓자고 주장했을 것이다. 물론 사진 속에 보이는 아파트 중 한 곳에서 살았던 내가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 이율배반적인 이야기지만 말이다.
중학교 때 수업 마치고 친구들과 책가방 들고 뛰어 가서 모래사장에 교복 숨겨 놓고 물놀이를 하던 그 정겨운 광안리는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기에 아쉬워 하는 소리다. 대신 밤마다 백사장을 따라 늘어선 까페,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떠들썩한 음악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나 역시 친구들과 그곳에서 커피도 한 잔하고 소주도 마시며 놀았으니 이 역시 내로남불 소리 들을 일이다.
지세포는 많은 발전을 했지만 광안리 만큼 요란하지 않아서 좋다. 지리적인 문제로 그러했겠지만 앞으로의 개발은 딱 이 정도 선에서 타협을 보면 좋겠다. 조선산업의 여파로 개발하다 만 주택단지들이 볼썽사납게 산의 맨 살을 드러내놓고 있는 곳이 있다. 그런 개발업자들에겐 욕먹을 소리겠지만 산 형태까지 없애버릴 정도로 난개발은 안했으면 좋겠다.
자연과 인간이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발이 오히려 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선진국일 수록 에코 관광을 펼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100년이 지나도 후회하지 않을 개발 정책은 가능한 한 자연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공공디자인은 최소한의 개발로 최대한의 자연을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서투른 개발과 디자인은 오히려 자연을 망치는 일이다.
적어도 지세포에서 해야 할 일은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